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혁명의 시대/등장인물 (문단 편집) === 기타 ===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_Collin_de_Plancy|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친한파이자 동양학자인 프랑스 공사로 [[http://www.hy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7013|조선궁녀 이심]]을 사랑하여 고종과 [[김옥균]]에게 부탁하고 [[고종]] 역시 프랑스 공사의 환심을 사는게 중요하여 이둘의 결혼을 허락한다. 이 때문에 확고부동한 친한파가 되고 청나라가 조선에 압박을 가할때 프랑스가 한국편을 들도록 유도한다. 물론 프랑스는 플랑시때문이 아니라 베트남을 차지 하기 위해 청나라와 전쟁을 벌였으나 역사의 변화로 무승부로 끝나자 그것에 대한 앙심으로 행한일이다.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이선이 노년의 그를 만났다. 오랜 숭배자였다면서 최상의 예우를 표하자 크게 기뻐하고,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하자 처음엔 동양 군주의 초상화라 잠깐 부담스러워하지만 몇가지 요소만 빼고 원하는 대로 그리라는 말에 승낙하고, 이때 그린 초상화가 3부의 표지가 됐다는 설정이다. 이선이 [[내탕금]]으로 그림을 사들이고 그림에서 위안을 얻으며, 국민들도 자신과 똑같은 감상을 느끼길 바라며 미술관을 지어서 전시하고 있다는 말에 진정한 예술 애호가라며 감탄한다. * '''[[펠릭스클레르 리델]]'''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61년 조선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도주, 프랑스 해군에 알려 [[병인양요]]의 원인이 된 신부. 프랑스 방문 당시 다시만나며 이선이 병인양요 원인임을 지적하자 리델 신부 역시 이를 인정한다. 이선은 리델의 순수한 종교적 동기에 감탄하고 한국어 사전의 유럽 출판 ,종교의 정치개입 금지와 조선의 풍습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준다.[* 프랑스와 수교하기 위해서는 카톨릭 종교의 자유가 필수적이어서 원래 역사처럼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 3부 시점에서 서울 대주교를 지내고 있다. 원 역사의 행보를 반영해서인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신부들이 원산 학살의 진상을 알리려는 것을 막았지만, 본인은 개화당 정부와 야합하고 있다. * '''[[https://www.wikidata.org/wiki/Q110644397|제라드 메즈니]]''' [[https://ko.wikipedia.org/wiki/%EB%A7%8C%EC%A3%BC_%ED%8E%98%EC%8A%A4%ED%8A%B8|만주페스트]] 당시 청나라에서 방역 전문가라고 파견한 의사. 천진 육군군의 의학당의 교장. [[페스트]]는 오직 선페스트, 즉 접촉으로 만 전염된단 당시 사고 방식을 그대로 가진 의사. 동양인 몇명이 주장하는 폐페스트 이론을 무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환자를 돌본 결과 페스트에 걸려 죽고 이사람 시체를 부검하여 폐페스트임이 증명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